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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신사고] '氷神' 김동성의 '가슴 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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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이크임팩트 작성일13-07-08 19:03 조회4,8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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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출판 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차별화된 콘텐츠와 마케팅으로 업계를 평정하고 있는 좋은책신사고는, 상반기를 정리하고 하반기를 더욱 알차게 준비하기 위해 1박 2일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조별로 앉아 PT, 레크레이션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인 김동성 위원님을 모시고 프로들의 열정을 교류하였습니다.

 

김동성 위원님의 쇼트트랙 선수 시절  경기 영상이 상영된 후 연사님이 무대로 등장하자, 연예인 뺨치는 멋진 외모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강연속으로]

 

내가 쇼트트랙을 선택한 이유

 

초등학교 시절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선수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너무 멋있어서 어머님께 말씀드리니 한 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선수가 아니라 주 3회 취미로 시작했는데, 겨울이 되니까 선수들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장으로 가는 거예요. 당시에는 스케이트장이 365일 운영하는 게 아니어서 여름에는 롤러스케이트로 연습을 하고, 겨울에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 연습을 했던 거죠. 저도 자연스럽게 스케이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굉장히 유망주였어요. 매번 시합에 나가면 1등을 했고요. 중학교 1 학년 때 큰 시합을 처음 뛰게 되었는데, 당연히 우승을 할 줄 알았죠. 그런데 동메달을 딴거예요. 마지막 시합은 전국체전이었는데, 예선 탈락을 했어요. 아버지는 저한테 스케이트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느냐, 다른 종목으로 해보면 어떻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 때 스케이트를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스케이트를 타면 제 얼굴에 바람이 스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였어요. 두 번째는 다른 스포츠를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데, 입상은 하더라도 다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메달을 못 따지만 더 열심히 해서 아버지께 보여드리겠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허락해 주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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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 시절 입성한 태릉 선수촌

 

중 3 시절이 저한테는 터닝포인트 였는데요.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국내 선발전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 시합은 남자 3 명, 여자 3 명을 뽑는데 중고등학생이 같이 시합을 해요. 그때 당시 제가 고등학교 형들을 제치고 종합 우승을 하게 되었어요. 그 후에 처음으로 집을 떠나 태릉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으로 훈련을 떠났어요. 바로 그곳에서 국가대표 쇼트트랙 팀 감독님이 저를 데려가셔서 운좋게 시니어 대회 대표가 되어 처음 출전했는데 금 1, 은 2, 동 2 개를 땄어요. 원래 국가대표가 되려면 선발전을 통해서 될 수 있었는데 저는 운이 좋게 선발전 없이 국가대표가 된거죠. 그 다음 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발탁이 되었어요.

 

 

경기 전 날 돌아가신 아버지

 

 

고2 때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 저의 시합을 보고 싶다고 하시길래 초대를 했죠. 저희 아버지가 원래 건강이 별로 안좋아셨는데, 그날 경기장에서 관람을 하시다 쓰러지셔서 돌아가시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나 때문에 어머니가 혼자가 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았지만,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스케이트를 열심히 타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메달을 따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 그 후에 스케이트를 그만 둬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버지가 쓰러지신 스케이트장이 제 연습장이어서 자꾸 아버지의 죽음이 떠오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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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붕대를 감고 얻은 첫 올림픽 금메달

 

일본 나가노 올림픽을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전지훈련간 곳에서 다리를 다쳐서, 훈련을 한 게 아니라 치료만 10일 동안 한 거에요. 감독님께 제가 출전하지 못 할 것 같다고 말씀 드리니까 이미 엔트리에 저를 포함하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압박붕대를 감고 참으면서 훈련을 했는데 시합 날이 다가왔고 다리는 정말 경기를 나가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제가 처음 목표로 했던 올림픽 금메달은 딸 생각도 없어졌고, 빨리 예선 탈락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고요. 그런데 예선을 운 좋게 통과하고 준결승에 올라가서는 정말 금메달을 따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승전에서 한 선수만 잡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 선수, 한 선수 제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앞에 중국 선수 한 명만 남게 되었어요. 마지막 피니쉬 라인이 다가오면서 중국선수가 손을 드는 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중국선수가 이긴 줄 알고 아픈 다리를 쭉 폈는데 그 다리 때문에 제가 이기게 되었어요. 그렇게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게 되었어요.

 

 

형만 믿고 타

 

 

제가 주장이 되면서 항상 후배들한테 “형만 믿고 타”라고 얘기하는데요, 제가 잘 타서가 아니라 그 말 한마디가 후배들한테는 긴장을 풀어 주면서도 자기의 기량을 100퍼센트 아니 120퍼센트를 발휘하게 해주거든요. 그러면 우리 팀에게 더 좋은 경기가 되고요. 그래서 저는 주장이 되고나서 매 시합마다 편하게 타라고 말했어요. 그러고 나서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전 관왕을 차지했고, 한국에 들어와서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은퇴를 했죠. 제가 8년 동안 태릉에 있으면서 여러 위치에서 경험을 해보니까 단체전에서 제일 부담이 컸어요.

 

 

팀 워크의 중요성

 

팀워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예요. 좋은책 신사고가 앞으로 훨씬 더 커져 나갈 수 있는 회사인데, 여러분들이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된다면, 나만 잘났다는 생각보다는 남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준다면, 그것이 이 회사를 키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게 했을 때 자부심이 생긴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하시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에 자부심을 갖는다면 의기소침한 지금을 빨리 회복할 수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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