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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하우시스] 뉴스황제 최일구,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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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이크임팩트 작성일13-08-02 11:06 조회5,9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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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속으로>

 

제 이름을 한자로 쓰면 간단합니다. 한 '一' 자, 아홉 '九' 자, 제가 1960년에 태어났는데, 셋째 손자로 태어났어요. 할아버지가 ‘옛다, 올해 4 19가 일어났지’. 그래서 제 이름이 ‘一九’가 됐어요.

 

제가 방송사에서 근무를 하다보니까, 대학교 학부생들, 미디어학부나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아저씨 와서 특강 좀 해주세요’ 그래요. 한 달전에 서울 모 대학에가서 열심히 특강을 하고, 다음 날 네이버에 혹시 나한테 뭐 쓴 거 없나 찾아보니까 트위터에 그런 게 떴어요. 전날 수강한 남학생이 쓴 것 같아요. ‘최일구 앵커 강연이 개인적으로 가장...’ 해서 클릭하기 전에 분명히 ‘들을만 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어떻게 썼냐면, ‘남는 게 없는 강연’ 이었다는 거예요. 개드립이나 치다 끝났대요. 그러니까 큰 기대하지 마시고요, ‘아, 저 친구가 저렇게 살아왔구나’ 이 정도만 알고 가시면 됩니다.

 

1910년도,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비가 막 오는데 가구점 처마 밑에 웬 할머니가 우산도 없이 혼자 처마 밑에서 벌벌 떨면서, 비를 피하고 계시더래요. 그래서 가구점 점원 24살 먹은 클레멘트라는 친구가 있는데, 굳이 밖에 나가서 할머니를 가구점으로 모시고 들어와서 커피 한 잔 대접하면서, ‘할머니, 비 그치면 돌아가세요’ 그랬대요, 그래서 이 할머니가 가면서 자기 명함 한 장을 주고 갔어요. 가고 나서 이 가구점 사장님한테 편지가 왔답니다. 몇 일전에 너네 가구점 점원이 우리 엄마한테 작은 친절을 베풀어서 우리 어머니가 너무나 감동했다, 내가 피츠버그 시에 넓은 빌딩을 짓고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가구 일체를 너네 가구점 것으로 하겠다 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뒤져보시면 아실거예요, 대충 맞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아, 앞으로는 비가 오는 날 버스정류장에 할머니가 우산도 없이 혼자 계시면, 옆에 자판기에서 커피라도 뽑아드려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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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서 삽시다


선생님들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예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하면서 삽시다’. 제가 MBC 들어와서 한 25 - 6년 살았는데 제가 그런 것을 느꼈고, 그 다음에 우리 나라에서 성공하신 분들의 에세이를 읽어봐도 공통점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찾아가지고 하는’ 것이더라고요.

 

우리가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셀프리더십, 자기계발, 자기 혁신이 필요합니다. 셀프리더십이 뭘까. 나한테 스스로 계속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면서, 침체되어 있는 나를 자꾸 앞으로 한발짝 씩 밀고 나가게 하는 리더십, 이게 셀프리더십 입니다. 저는 이 셀프리더십을 위해서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이를 먹어도 꿈을 가지고 사는 것. 그다음에 쉬지 말고 변화를 하는 것, 그 다음에 가족과, 사람들과 긍정적으로 소통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의 키워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두려운 게, 5년 정도 후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안 잘리고 다닌다면 이제 은퇴를 해야되는데, 일에는 은퇴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100살까지 살 자신은 없고, 80까지는 살고 싶은데, 50대 후반에 은퇴를 하더라도 저 같은 경우 이십 몇 년을 더 살아야 되는데, 뭘 하고 살거냐 이거예요. 그래서 항상 ‘뭘 하면서 사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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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제가 이 노래를 굳이 만들고 대학교에 갔더니요, 신입생 장기자랑을 한다는 거예요. 이 노래를 가지고 올라가서 대상을 먹었습니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고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는데, 저 노래가 인연이 되어서 대대까지 안내려가고 연대 본부대에서 약간 편한 보직을 맡게 되고, 그런 게 있습니다.

 

이 가사 내용은 뭐냐면요, 사는 게 너무 지겨워, 그래서 0시에 출발하는 태양의 로케트를 타고 우주로 떠났어요. 근데, 한참 가다가~ 그래서 거기서 생각을 하는거예요. 저 쪼그만 동그라미 안에서 인간들이 왜 그렇게 싸우면서 사는가, 좀 느슨하게 살자. 이런 내용으로 만들었습니다…(중략)

 

(영상 시청)

 

저 보도가 나가고 나서,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 2년 동안 다 철거하고, 새로 지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여튼 제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것. 그리고 제가 2580 초기 멤버로 들어갔는데, 첫 날 출근을 했더니 저희 데스크가 부르는 거예요. 2580 데스크 선배가. ‘야 너 어제 서해안 보령 앞바다에서 잠수부 한 명이 식인상어한테 물려 죽은 거 알아 몰라?’ ‘아, 압니다.’ 그랬더니 너 빨리 가서 식인상어 찍어오래요. 식인상어가 무슨 붕어예요? 미꾸라지도 아니고. 그런데 보도국이라는 곳은, 특히 방송은요, 위에서 까라면 무조건 까야해요. 거기서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이렇게 할 수가 없거든요… (중략)

 

제가 젊을 때 열심히 취재생활을 하다 보니까. 2003년 가을 어느 날,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새로 뽑겠다는 거예요. , 그래서 저도 선후배, 동료 기자들하고 오디션을 봐서, 10여 명 하고 같이 봐서, 드디어 주말 앵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입사와 함께 꿈꿔왔던, 메인 앵커는 아니지만 앵커라는 것을 하게 되었어요.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걸 막상 하라고 하니까 걱정이 되는 게, 방송은 생방송으로 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방송사고가 났어요.

 

(앵커 첫 날 뉴스 영상 시청)

 

(중략) 어쨌거나 저쨌거나 중학교 때 꿈꿨던 기자라는 것도 해봤고, 또 앵커라는 것도 해봤어요. 참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사나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쉼 없이 변화해야 합니다. 안주해서는 안된다. 안주하면 남의 술안주 밖에 안되고, 자꾸 익숙함과 결별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기자들이라는 게 그런거거든요, 1-2년에 한 번씩 이렇게 ○○인사를 해서, 정치부에서 경제부로, 이러면 기자들은 출입처가 바뀌잖아요? 예를 들어서 뭐 현대차 출입 1년을 했어, 현대차 홍보실 직원들하고 잘 지내다가, 갑자기 막 스타일보로 보내, 그러면 익숙했던 그 시절만 생각을 해서, 새로운 출입처에 갔을때 늘어진단 말이예요. 저는 익숙함과 자꾸 결별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뉴스도 좀 바꿔보자. 공중파 3사의 뉴스 앵커들이 다 똑같아. 다 ‘그랬습니다, 저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뉴스 변화의 시도를 네 가지 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시청자에게 말 걸기를 해 보자. 신문은 문어체이고 방송은 말하듯이 한다고 해서 구어체라고 하는데, 말로만 그렇지 전부 군대식이야. ‘그랬습니다 저랬습니다.’ 전부 딱딱해. 그래서 말하듯이, 우리가 어른하고 말할 때 ‘~하지 않았습니까?’ ‘~ 했잖아요.’ 우리말은 이렇게 하는건데, 그게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했습니다.. (중략)

 

(영상 시청)

 

왜 시청자들이 뉴스를 보면서 웃으면 안될까, 이런 의문이 생겼어요. 물론 예민한 문제는 엄중하게 해야겠지만, 뉴스가 중후반으로 가면 황당한 뉴스도 있고, 미담도 있고해요. 그런거는 좀 웃겨볼 수도 있는거 아니냐, 그래서 이렇게 한겁니다.

 

(영상 시청)

 

그런데, 반응이 안좋아요 ‘장난 치냐’, ‘최일구 50대 저질 개그 한다’ 그런데, 악플이 달리면 나이는 먹었어도 마음이 좀 안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런 스타일을 고집했느냐 하면 제 좌우명이 이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논어 첫 페이지 펴면 딱 나오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성질내지 않는 것이 군자다. 나를 무시하고 왕따시켜도, 나의 진정성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문화는 뉴스에서 저렇게 유머를 했다고 해서 또라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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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시지로는, 소통을 합시다. 시청자 여러분, 그래서 뉴스 센터에 앉아가지고 똥폼잡고 넥타이 매고, ‘여러분, 소통하겠습니다.’ 이러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으로 나와서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서 서울이든, 지방이든 어디든 가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자, 실천을 했어요. (영상 시청) 이렇게 제 나름대로 기존의 뉴스와는 차별화된 뉴스를 하느라고 혁신을 했어요. 그랬더니 8.2%로 시작했는데 금방 13%로 올라갔어요. 그래서 저는 아, 일이라는 게 뭐든지 하면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한 번에, 대박을 터트리는 것은 없다. 그것은 흥부 박하고 로또밖에 없다. 로또 다 사봤지만 '*또'밖에 안되더라고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 급훈이 이거였어요. ‘하면 된다, 하면 된다’. 내가 나의 진정성을 가지고 쪼금씩 쪼금씩 하다보면 어느새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쪼금씩 쪼금씩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터득을 했습니다…(중략)

 

우리는 너무 유머가 없어요. 삽화에서 보는 것처럼 유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일도 못해요.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해요. 사람이 많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재밌어야지. 재미없는데 누가 다가서겠냐고요. 사람이 유머를 많이 해서 많이 웃잖아요? 남자는 정력이 강해지고 여자는 목소리가 좋아져요. 많이 웃어야 해요.

 

(영상 시청)

 

이렇게 재밌게 하니까, 시청률은 MBC 1등을 했어요. 기사가 많이 나고.

선생님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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